최근 자동차 시장은 인수합병의 시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격변하고 있습니다.
자본력 있는 제조사가 경영난에 시달리는 제조사를 인수하거나, 부진한 제조사끼리 합치는 합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인수합병의 사례 중 가장 최근에 말도 안되는 규모로 연합을 맺은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스텔란티스입니다.
스텔란티스에 소속된 제조사들은 이렇습니다.
- 이탈리아: 피아트, 알파로메오, 마세라티, 란치아
- 미국: 닷지, 크라이슬러, 지프, 램
- 프랑스: 푸조, 시트로앵
- 독일: 오펠
- 영국: 복스홀
이들은 모두 세기의 명차들을 출시했던 제조사입니다.
하지만, 세기의 명차들을 출시'했'다는건 결국 과거입니다.
현재 자동차 시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발빠른 대처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위의 제조사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발 맞추지 못해 고꾸라졌습니다.
사실 이 대합병이 진행되기 전, 이들은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한쪽은 피아트 산하의 크라이슬러, 닷지, 램, 지프, 복스홀,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란치아로 구성된 FCA (Fiat Chrysler Automobiles) 그룹,
다른 쪽은 푸조, 시트로엥, 오펠, 복스홀로 구성된 PSA 그룹입니다.
이렇게 그룹이 있다는건 예전에도 인수합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굳이 왜 인연도 없는 다른 제조사들과 합병을 했을까요?
바로 부진으로 인한 경영악화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그룹 둘이 합병을 맺은건 사정이 더 어려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합병 전부터 휘청한 이유는 각자 다양합니다.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이탈리아 제조사들입니다.
고급 명차 제조사 마세라티, 알파로메오는 자신들의 럭셔리 정신을 너무 고집한 나머지 후지고 가격만 비싼 브랜드로 전락했습니다.
90년대 말 경제위기와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로 강제 단종과 더불어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고, 이에 따라 자본력도 감소하여 개발자금마저 바닥나 피아트 그룹에 인수되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저가형 차 만들기는 자존심 상하고, 전통에 위배되니 변화하는 시장에서 꿋꿋히 버틴 결과입니다.사실 그렇게 럭셔리하지도 않은데
란치아는 고성능 경량 자동차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제조사입니다.
험난한 지형을 경주하는 랠리 대회에서도 수많은 경기를 석권했고, 가벼운 무게와 로켓같은 가속력은 슈퍼카에도 뒤지지 않을 속도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변화하는 시대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끝에 시장에서 도태되었습니다.
이어서 미국/영국 제조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닷지, 크라이슬러, 지프, 램, 복스홀은 자신들의 스타일만 고집하다 망했습니다.
닷지와 램은 미국 시장에서 출력높고 덩치 큰 머슬카와 픽업트럭을 주로 제작했고,
지프는 비포장용 SUV,
복스홀은 호주에서 머슬카에 짐칸을 합친 머슬픽업이 주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취향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것만 고집할 순 없는 법입니다.
외형부터 구식의 느낌이 물신나며 '아직도?'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디자인부터 지고 시작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이들의 발목을 크게 잡은건 바로 품질이었습니다.
품질이라도 좋아야 반은 가는데, 낮은 내구성과 잔고장으로 소비자들이 골머리를 앓았고, 시장에서 빠르게 외면받았습니다.
결국 투박하고 못생기고 기름만 많이 퍼먹는 차를 만든다는 낙인이 찍혔고, 후에는 피아트 그룹에 인수됩니다.
프랑스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여기에 '프랑스산 감성' 만 추가하면 됩니다.
푸조, 시트로엥은 자동차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유서깊은 제조사입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감성과 자부심에 취해 시장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고, 부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잦은 잔고장과 난해한 디자인은 '굳이 이 차를 사야할까?' 라는 의구심만 남긴 상태로 내수시장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외면받으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큰 북미시장에서 일찍이 철수한 것을 보면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프랑스의 현대 기아라 불리는 푸조 시트로엥은 부진 속에서 스텔란티스 소속이 되었고, 프랑스에 건재한 자동차 제조사는 르노만 남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오펠은 중~소형차 및 상용차 제조사입니다.
창립 160년 최장수 제조사 중 하나로,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길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오펠은 1929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88년동안 미국의 제너럴모터스 소속이었습니다.
2017년, 실적 부진으로 제너럴모터스가 유럽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오펠은 푸조/시트로엥 산하인 PSA 그룹으로 매각되었습니다.
매각되기 전까지 제너럴모터스 산하에서 20년간 적자만 내다 유럽시장 철수와 동시에 버려졌고,
입양된 PSA 그룹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빛을 보나 싶었지만, 또다시 그룹 전체 경영악화로 덩달아 스텔란티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FCA, PSA 그룹이 합병하면서 탄생한 게 스텐란티스입니다.
결론은 망해가는 제조사들이 하나로 뭉쳐 연합을 결성한 것이죠.
스텔란티스를 보는 필자의 견해는 부정적입니다.
몸집을 부풀렸지만 부족한 자본력은 여전하고, 되려 자신들에게 해당되지 않던 타 제조사의 문제를 같이 떠안게 된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개발비용 절약을 위해 자동차의 기반이 되는 뼈대인 플랫폼과 엔진, 각종 부품을 서로 돌려쓰며 공유하고, 껍데기만 바꾼 차들이 줄줄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품질개선과 상품성 향상을 거쳐도, 이미 벌어진 타 제조사들과의 격차를 회복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현재로서는 침몰하고 있는 거대한 배 입니다.
세계 10대 자동차 제조사에 들어가 있지만, 옛 영광을 되찾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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