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대형 SUV 타호가 작년 1월 국내시장에 상륙했습니다.
미국에서 주로 경찰, 경호원의 차로 널리 알려진 타호는 길이가 무려 5.3m에 육박하는 덩치를 자랑합니다.
높이는 약 1.9m로, 실제로 도로에서 보면 소형버스와도 맞먹는 크기입니다.
하지만 한국GM이 어떤 의도로 이 하마같은 SUV를 출시했는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그 이유는 라인업, 가격, 나사빠진 사양으로 3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1. 라인업
쉐보레 타호는 국내시장에 6.2 가솔린 단일사양으로 출시했습니다.
V형 8기통 엔진에 6162cc의 배기량으로, 미국과 동일한 사양으로 들어왔습니다.
문제는 성능이 아닌 단일 라인업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가 시장에 출시되면 엔진 사양과 구동방식을 선택하고 그 후에 등급별 옵션을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호는 6.2 가솔린 사양 하나로 출시되어 가장 중요한 상품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북미시장에서는 6.2 가솔린 사양과 더불어 3.0 디젤 사양도 있습니다.
3.0 디젤 사양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배기가스 인증 방식이 달라 출시하지 못했는데, 디젤 SUV의 인기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시작도 전에 다른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내준거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배기량이 높을 수록 납부하는 자동차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고배기량 엔진을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배기량이 6162cc인 타호의 1년 자동차세 납부금액은 무려 160만원입니다.
10년을 타야 겨우 100만원 아래로 내려갑니다.
또한 주 하나가 한반도보다 큰 북미와는 달리 남한인 우리나라에서는 영토 크기상 타호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에, 경제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게다가 타호의 복합연비는 6.4km/L로, 어지간한 슈퍼카와 비슷합니다.
도심은 5.7km/L, 고속은 7.6km/L지만, 실연비는 도심에서 0.5~ 3km/L, 고속에서 4~ 6km/L가 최대입니다.
반면, 국내에서 판매 중인 대형 SUV들은 모두 두가지 이상의 라인업이 있습니다.
벤츠의 GLS와 EQS SUV, BMW의 X7,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가 이에 해당합니다.
심지어 EQS는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라인업이 450과 580 두가지입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형 SUV 중 타호와 비슷한 가격대에 가솔린 사양만 판매하는 유일한 경쟁자는 포드 엑스페디션인데, 이 차의 경우 6기통 엔진에 트윈터보를 얹어 출력과 동시에 연비까지 챙겼습니다.
또한 배기량이 3500cc이기 때문에, 납부하는 자동차세는 타호의 절반 수준입니다.
반면, 타호는 출력만 높고 경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출력을 발휘할 장소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6.2L 가솔린 단일 사양은 출시 의도와 타겟이 불투명합니다.
거기다 최근들어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국내시장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 사양을 출시하는 게 과연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2. 가격
타호의 가격대는 9,253~ 9,363만원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이 컨트리 사양이 9,253만원, 다크 나이트 사양이 9,363만원 2가지 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입차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운송 비용, 국내 출시 전 인증 비용 등이 붙어 10%~ 20% 정도 가격이 붙어서 들어오는 반면, 타호는 환율을 고려해도 북미와 큰 차이가 없는 가격으로 출시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가격 책정에 마진 뻥튀기가 거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가성비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쉐보레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쉐보레는 럭셔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주로 국민차라는 이미지로, 가격은 현대/ 기아보다 저렴하지만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 이른바 '가성비 자동차' 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쉐보레보다는 GM대우라는 인식이 더 강하기 때문에, 타호의 가격을 보면 '굳이?'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1억짜리 쉐보레는 굉장히 낯선 이미지라는 것이죠.
반면 위에서 언급한 유일한 경쟁자 엑스페디션을 판매하는 포드는 일찍이 우리나라 시장에서 비싼 미국차라는 이미지가 잡혀 있습니다.
그런 제조사에서 대형 SUV를 내놓아도 비싸면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쉐보레는 그렇지 않습니다.
3. 나사빠진 사양
타호는 반도체 수급난의 여파로 주문하면 일부 옵션이 빠진 상태로 출고됩니다.
현대/ 기아는 차량 인도 받으려면 수개월 또는 연단위로 대기하는데 반해, 쉐보레는 여타 수입 제조사들처럼 가급적 빨리 차량을 먼저 출고하고 부품을 수급받는대로 무상 장착하는 '우선출고 옵션제도' 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차는 비교적 일찍 받을 수 있지만, 돈 주고 추가한 옵션이 빠진 상태로 타고 다녀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허나 더 큰 문제점은 타호에서 빠지는 옵션의 중요성에 있습니다.
바로 전/후방 주차감지 센서입니다.
덩치가 버스에 버금가는 대형 SUV를 감으로만 주차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게다가 타호는 큰 덩치만큼 길이가 5m가 넘어서 우리나라 주차장 환경과 맞지 않습니다.
차단석에 바퀴가 닿기도 전에 이미 범퍼가 벽에 충돌합니다.
타호를 타기 이전에 대형차를 몰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겠지만, 타호가 처음이거나 대형차를 몰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차 크기가 가늠이 되질 않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360도 어라운드 뷰나 후방 카메라, 디지털 룸미러는 달려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도 주차할 때 벽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감지음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영상만으로는 역부족인게 현실입니다.
큰 돈 주고 산 차가 옵션도 다 안 달려있고, 안그래도 기름 퍼먹는 차 비싼 기름 쓰고 장착하러 가야한다는 건 더욱 납득이 어렵습니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부품이 언제 입고될 지 모르는 마당에 기약없는 장착 대기는 신뢰성마저 떨어집니다.
정리하면, 타호가 국내시장에서 불리한 요소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선택권이 없는 단일 사양 (6.2L 가솔린)
수요 적은 대형 SUV 시장에서의 비싼 가격
반도체 수급난으로 옵션이 빠짐과 동시에 기약없는 장착대기 기간
국내 출시 후, 타호의 판매량은 예상대로 저조합니다.
2022년 한 해동안 타호는 총 387대가 판매되었지만, 23년 1월에는 13대를 판매하는데 그쳤습니다.
한국 GM 판매량 대부분을 트레일블레이저가 차지하고 있고,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타호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야심차게 대형 SUV 시장의 주자로 등판했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없습니다.
출시 직후 반짝효과가 이미 꺼진 상황인데다 수요층이 적은 국내 대형 SUV 시장에서의 타호의 앞길은 아직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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