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여파로 환율이 치솟고, 가격이 그 가격이 아닌 시기가 되면서 자동차의 가격도 함깨 수직상승했습니다. 하지만 환율 상승을 고려한다해도 자동차의 가격 인상 폭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자동차의 가격은 올랐는데, 품질은 점점 내려간다는 게 문제입니다.
최근 들어 필자는 지인들로부터 자동차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 지인의 지인이 차를 구매한다고 어떤 차를 사면 좋을거 같냐 부터 지인 본인이 첫 차를 장만하려고 하는데 괜찮은 차 좀 추천해달라는 말에 필자는 선뜻 차종을 추천해주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요즘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친 듯이 혈안이 되어있는 원가 절감 때문입니다.
원가절감이란 무엇일까요? 제조사가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조할 때 사용되는 각종 부품이 있습니다. 이 부품들은 저마다의 가격이 있고, 품질과 기능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다릅니다. 따라서 이 부품을 질 낮은 걸로 바꾸거나, 빼버리게 되면 제작비용이 줄어들어 그만큼 마진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판매가를 높이게 되면 이 마진은 비례하여 많아지게 됩니다. 100원을 아껴도 자동차가 생산되는 수를 곱해보면 그 가격은 얼마나 커질지 예상이 가능한 부분이죠. 이게 원가절감입니다. 필자는 직업 특성상 여러 종류의 차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차부터 출시한지 얼마 안된 따끈따근한 신차까지 사실 모터쇼에 갈 필요성을 못느낍니다.
제조사들의 원가절감은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수준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교묘한 원가절감 중에선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인 부분들이 몇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필자가 이때까지 차들을 보면서 발견한 어이없는 원가절감 요소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1. 트렁크
트렁크는 물건을 싣고 내릴때 외에는 잘 확인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요즘 출시되는 차들은 이 트렁크에서 집중적으로 원가절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트렁크 원가절감 중 하나는 손잡이 삭제입니다.
국민세단 아반떼를 예로 들면, 가장 최근에 출시한 CN7은 트렁크를 닫을때 잡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전 모델인 AD에는 있습니다. 가격이 더 낮아졌다면 납득 가능하지만, CN7의 가격이 환율을 고려해도 역대급으로 높게 나왔다는게 문제입니다. CN7의 가격은 1866만원부터 시작되며 꼭 필요하다 싶은 옵션만 넣어도 2000만원이 넘어갑니다. 사실상 가장 낮은 등급을 골라도 취등록세를 합하면 2000만원이 넘습니다. 반면 바로 전 모델인 더 뉴 AD는 1376만원에서 시작해 풀옵션이 2159만원입니다. CN7은 중간등급인 모던만 해도 2100만원이 넘어가는데, AD가 2019년에 출시된 차이고 둘 사이의 공백이 3년임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 차이입니다. AD의 풀옵션 가격으로 CN7은 중간 사양밖에 못 삽니다. 비싸진 만큼 기본기는 충실하되 더 많은 기능이 들어갔다면 모를까, 500만원이나 비싸진 차에서 트렁크 손잡이가 빠진건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트렁크 손잡이가 있으면 쉽게 닿을 수 있던 예전과 달리, 없는 차는 지저분하게 트렁크 바깥쪽을 짚고 내려야하기 때문에 손도 더러워지고 보기 흉한 손자국이 남습니다. 또한 손톱이 긴 경우 닿으면서 표면에 흠집을 낼 수도 있죠. 그 다음으로 트렁크에서 원가절감이 이루어진 부분은 그냥 보아선 모르는 위치입니다.
바로 트렁크 아래에 숨어있던 스페어 타이어입니다.
이 스페어 타이어가 어느샌가 빠진 상태로 출시하고, 원래 있던 자리에는 수납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스페어 타이어는 주행중 펑크가 났을 때 임시방편으로 수리하기 전까지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필수 용품입니다. 그런데 이걸 없애버리면, 펑크가 났을 때 오도가도 못하게 되고 무조건 보험사를 불러야 합니다. 접근이 쉬운 도심지에서 펑크가 났다면 금방 보험사에서 출동하여 조치를 받을 수 있지만, 산간지방이나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하염없이 길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LPG 차들은 이 스페어 타이어가 있던 공간을 도넛모양의 가스통으로 바꾼 상태로 출시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커다랗게 가스통이 있어 트렁크 공간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스페어 타이어를 없앤 결과로 일반 차와 동일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과연 실용성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이 방침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용성을 빙자한 원가절감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말이죠. 그래서 요즘 차들은 펑크나면 따로 수리키트를 지참하고 다니지 않는한, 보험사를 불러야 합니다. 스페어 타이어까지 없애가면서 마진을 챙기는 제조사의 자동차를 대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구매를 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2. 문짝 수납함
국산 SUV들 사이에서 아주 유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원가절감입니다. 본래 문짝 수납함은 아래쪽에 크게 하나 있고, 창문 스위치 옆에 손잡이 겸용으로 작은 수납공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아의 쏘렌토를 살펴보면, 본래 수납공간이 있어야 할 부분이 휑하니 뚫려있습니다. 수납공간인줄 알고 물건이라도 넣으면 밑으로 낙하하게 되는 셈입니다. 설마 이걸 잡기 편하라고 구멍을 뚫어놓았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가 있지도 않아 보입니다. 결국은 수납공간을 하나 줄이면서 제작비용을 아끼는 원가절감입니다. SUV는 크고 높은 자체와 함께 넓직한 실내공간의 활용도가 강점인 자동차입니다. 따라서 일반 승용차보다는 당연히 수납공간이 많아야 하고, 승용차보다 비싼 가격만큼 좋아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쌀 수록 좋다는 건 국룰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문 네짝에 들어가는 수납공간을 없애버리면, 오히려 그 수가 승용차보다 적어집니다. 이 문짝 수납함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작은 수납함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 지를요.
그래서 이렇게 원가절감으로 문짝 수납함이 없어진 차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용품 업체들은 각 차종에 맞는 별도의 수납함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것을 돈 주고 구매해야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입니다.
3. 후방 센터 암레스트
필자는 요즘 차들은 이게 없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흔히 뒷좌석 팔걸이라고 불리는 센터 암레스트는 뒷좌석에 앉은 탑승자가 편하게 팔을 걸칠 수 있음과 동시에 음료나 텀블러 등을 놓을 수 있는 컵홀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센터 암레스트를 현재 판매 중인 K3의 경우, 가장 높은 사양인 시그니처를 선택해야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밑의 사양인 프레스티지와 트랜디에는 옵션으로 추가할 수도 없습니다. K3는 시그니처 사양을 선택할 경우, 가격이 2500만원입니다. 취등록세까지 합하면 거의 3000만원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바로 윗급인 K5도 가장 높은 사양인 시그니처를 선택해야 암레스트가 있습니다. 실내공간이 한층 넓어진 중형 세단에는 사실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암레스트를 이용하기 위해선 가장 높은 사양을 선택해야 비로소 누릴 수 있다는 것이죠.
K3같은 준중형 차에 그런게 있으면 어디다 쓰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급 나누기로 가장 높은 사양에 끼워판 적은 없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다면 말도 안 했을텐데 있던 걸 없애니까 문제인 겁니다. 이런 것도 원가절감 차원에서 슬그머니 빼서 옵션장사를 하는게 과연 맞을까요? 이제 뒷좌석 암레스트도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고급옵션이 되었습니다.
4. 오디오 시스템
요즘 차들은 옵션을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본래 화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저렇게 흉측한 오디오가 들어갑니다. 자동차 영상장비가 본격적으로 상용화 되지 않던 옛 시절에는 그러려니 했겠지만 2023년에 로체에 사용되던 오디오 시스템이 아직도 저렇게 버젓히 쓰이고 있는건 가히 충격적입니다. K3는 내비게이션도 없는 화면만 있는 디스플레이 오디오를 추가하면 60만원이 뜁니다. 왜 비싼가 하니, 저기에 후방카메라도 함께 장착되어 화면으로 연동되는 기능이 묶여 있었습니다. 사실상 추가할 수 밖에 없도록 끼워팔기로 옵션장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2000만원하는 차에 후방 카메라조차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디스플레이 오디오를 추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건 K3의 시작가가 1752만원이라는 겁니다. 불과 5년전만 해도, 1752만원으로 K3를 준풀옵션에 버금가는 사양으로 출고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차 값은 더 올랐는데, 기본적인 기능과 옵션은 더 빠져있습니다.
5. 다운 사이징
제조사들은 이제 편의사양을 넘어 자동차의 심장까지 원가절감을 가하고 있습니다. 환경규제를 이유로 실린더 수와 배기량을 줄이고 터보를 곁들이는 다운 사이징이 한창입니다. 모닝 같은 경차는 이미 3기통이 된지 오래고, 1600cc이던 준중형차들은 1400cc가 되고 있습니다. 2000cc이던 중형차는 1600cc가 되고 있으며, 준대형/ 고성능차에 들어가는 6기통 2400cc 엔진은 4기통이 되었습니다. 이게 왜 원가절감이냐 물을 수 있지만, 원가절감이 맞습니다. 배기량이 클 수록 엔진크기도 커지고 그만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출력을 낮춰 엔진 사이즈도 줄이고 제작/ 개발비용을 절약하여 원가절감을 거치는게 다운사이징입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다운사이징을 거치면, 출력이 약해져 힘이 달리게 됩니다.
배기량과 기통 수를 낮춘 대신에 과급기인 터보를 달아 전보다 높아진 성능을 홍보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차의 배기량이 낮아지면 그만큼 엔진 내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어 차가 허약해집니다. 그걸 자칭 보호장치이자 과급기인 터보를 단다고 1600cc가 2000cc를 이길 순 없습니다. 벌써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오는 반응에서부터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고, 힘을 필요로 하는 오르막이나 산길처럼 가파른 장소에서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차 크기와 엔진의 출력, 배기량은 비례관계에 있어야 상호 균형이 맞습니다. 아반떼나 K3 같은 준중형차는 1600cc, 쏘나타나 K5 같은 중형차는 2000cc, 그랜저, 제네시스 등 준대형차는 6기통 2400~ 3300cc 이렇게 차 크기별로 그에 걸맞는 성능의 엔진을 탑재하는 불변의 법칙을 지켜왔습니다. 수십년 동안 이 법칙이 바뀌지 않았던 이유는 위의 조합으로 최적의 효율을 발휘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환경규제를 핑계 삼아 이 불변의 법칙을 깨뜨리고 다운사이징을 거친 허약한 엔진을 탑재한 차들이 줄줄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가격은 훨씬 비싸졌습니다.
차 크기에 맞지 않는 허약한 엔진을 넣어놓으면, 무거운 차체를 작은 엔진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차는 안나가고 연비는 되려 떨어집니다. 효율이 오히려 나빠지는 것이죠. 원가절감에 혈안이 되어 자신들의 상품을 되려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쭉 보고 있자니, 나중에 필자는 어떤 차를 사야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게 딱 여기에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옛날 차들은 요즘 차들과 비교했을 때 기능이나 편의사양이 없었을 뿐 기본기가 부족하진 않았습니다. 그때도 원가절감이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필수불가결한 부분까지 손대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화려한 외관과 디자인 뒤에 원가절감을 숨긴 껍데기만 멋진 차들 뿐입니다. 출시된지 얼마 안된 차가 결함으로 뉴스에 나오고, 정비사가 뜯어보니 말도 안될 정도의 싸구려 부품으로 설계되었다는 인터뷰를 보고 있으니 어떤 차를 사야할지 물어오는 지인들에게 어떻게 답변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차 살때 중고차를 고려하는 지인들한테 절대 사지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오히려 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단종된 예전 차들이 가격도 저렴한데 더 좋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싸고 좋은 건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비싸면 좋아야 합니다. 따라서 높아진 가격만큼 품질과 기능도 좋아져야 하는데, 제조사들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기존 고객마저 등 돌리고 떠나지 않게 하려면, 원가절감으로 폭리를 취할게 아니라 내실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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